며칠 전 동아일보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와인에 맞춘 요리는 잊어라… JW메리어트 동대문이 뒤집은 ‘미식의 공식’’이라는 제목이었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의 한식 레스토랑이 기존의 ‘와인과 음식 페어링’이라는 정석을 완전히 뒤집고, 오히려 요리에 맞춰 와인을 고르는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읽으며 나는 곧장 몇 년 전 읽었던 『와인의 세계사』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는 와인이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문화와 역사를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는데, JW메리어트의 실험은 그 ‘그릇’을 요리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 셈이다.

사실 나는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직장인 40대 여성으로서 와인은 특별한 날에나 마시는, 약간은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이 기사를 접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정석’이라고 믿는 공식들은 과연 얼마나 견고할까? 독서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 순위나 유명인의 추천 도서만 따라가다 보면, 정작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JW메리어트가 와인 페어링 공식을 깨트린 것처럼, 독서도 내 취향과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이 호텔 레스토랑의 셰프는 인터뷰에서 ‘요리가 먼저고, 와인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즉, 손님의 입맛과 계절 재료, 요리의 맛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후에야 와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독서에서 ‘나는 왜 이 책을 읽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순위권 책을 집어 들지만, 정작 그 책이 자신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금세 덮어버리곤 한다. 나도 한때는 매주 신간 리스트를 따라가며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쫓느라 정작 ‘내가 좋아하는 책’을 놓친 적이 많았다.
이런 깨달음은 최근 읽은 『취향의 심리학』이라는 책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취향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와인 애호가들이 특정 품종을 선호하는 이유도, 독서가들이 특정 장르에 빠지는 이유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JW메리어트의 실험은 이런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해진 공식보다는 개인화된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종종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정해진 패턴을 따르곤 한다. 점심 메뉴도, 업무 루틴도, 심지어 책 선정까지도. 하지만 이 기사를 읽으면서 ‘효율’보다 ‘의미’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와인 한 잔과 함께 읽는 책은 반드시 ‘유용한’ 자기계발서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에세이나 소설이 더 잘 어울릴 수도 있다. 와인이 요리에 종속되듯, 책도 내 삶의 맥락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더 나아가, 이런 ‘공식 깨기’는 미식과 독서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문화 트렌드 중 하나인 ‘킬러 콘텐츠’의 쇠퇴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두가 같은 것을 소비하는 데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취향에 맞춰진 맞춤형 콘텐츠를 찾는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이나 유튜브의 개인화 피드는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라는 개인이 있다. JW메리어트의 와인 페어링 실험은 이런 개인화 시대에 호텔 미식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다.
블로거로서 나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책들, 즉 내 취향을 반영한 책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인기 있는 책도 소개하지만, 그것이 ‘내가 읽어서 좋았기 때문’임을 분명히 한다. 독자들도 나의 추천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맥락에 맞게 변형해서 받아들이길 바란다. 마치 JW메리어트의 셰프가 손님의 입맛에 따라 와인을 추천하듯, 나도 각자의 상황에 맞는 책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앞으로 미식과 독서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것이다. 음식과 책 모두 우리 삶의 일부이며, 둘 다 ‘경험’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JW메리어트의 실험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우리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일상을 바라볼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다음에 와인을 마실 때면, 나는 어떤 요리와 함께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취향에 맞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