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한겨레 기사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넓어지는 퀴어 영화의 영토…더 웃기게, 더 섹시하게’. 단순히 소수자를 다루는 장르를 넘어, 이제는 대중문화 속에서 당당히 웃고 사랑하는 존재로 자리잡는 흐름이 와닿았습니다. 평소 책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는 조금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이 기사를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계에서도 꽤 의미 있는 변화가 일고 있더군요.
사실 퀴어 서사라고 하면 예전에는 비극이나 고통, 혹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무거운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나 ‘후회하지 않아’ 같은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그때도 분명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어요. 한겨레의 해당 기사에 따르면, 최근 퀴어 영화들은 장르적 다양성을 확보하며 관객층을 넓히고 있다고 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심지어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 속에서 퀴어 인물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거죠.
이런 변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선, OTT 플랫폼의 확산 덕분에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하기 쉬워진 점이 큽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에서 글로벌 퀴어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창작자들도 영향을 받았을 테고요. 또, 한국 사회의 인식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이 높아지면서, 제작사도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개인적으로 최근 본 영화 중에 ‘메리 마이 데드 바디’라는 대만 영화가 기억에 남아요. 이 영화는 죽은 남자의 시신과 영혼이 살아있는 남자와 동거하는 이야기인데, 호러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버무렸어요. 무서우면서도 웃기고, 그러면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죠. 이런 작품들이 가능해진 것은 관객이 더 이상 퀴어 캐릭터를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고민을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퀴어 서사가 주류가 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장벽이 있어요. 배급사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나, 일부 보수적 관객의 반발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죠.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보입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퀴어 영화 섹션은 매진 행렬을 기록했고, 젊은 감독들이 자발적으로 퀴어 소재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여기서 잠시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문학 쪽에서는 퀴어 서사가 영화보다 훨씬 앞서 있었어요.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박상영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같은 소설들은 이미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죠. 특히 ‘딸에 대하여’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성소수자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내 많은 화제를 모았어요. 책으로 먼저 경험한 이야기들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서, 독서와 영화 감상이 하나의 선순환을 이루는 느낌입니다.
[이미지: 퀴어 영화와 책을 읽는 여성의 일러스트]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콘텐츠의 확산이 단순히 ‘포용’을 넘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이해와 동정을 호소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소비되길 바라는 거죠. 실제로 최근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 ‘리미트’는 퀴어 스릴러 장르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퀴어 캐릭터를 녹여냈어요.
전망을 해보자면, 앞으로 퀴어 영화는 더욱 다양해질 거라고 봅니다. 장르적 실험뿐 아니라, 연령대나 배경이 다른 퀴어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거예요.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중년 퀴어나 장애를 가진 퀴어의 삶은 아직 거의 다뤄지지 않았거든요. 또한,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의 영화화도 활발해질 테고요. 이미 ‘퀴어’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많은 웹툰이 나오는 걸 보면,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해요.
물론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시장이 커지면서 ‘퀴어 마케팅’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어요. 진정성 없이 소재만 가져다 쓰는 상업적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죠. 또한, 여전히 보수적인 시선을 가진 관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작품이 모든 걸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큰 변화를 이끌어낼 테니까.
마지막으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와 책의 연결 고리를 강조하고 싶어요. ‘메리 마이 데드 바디’를 보고 나서 관련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는데, 영화에 담을 수 없었던 내면의 깊이가 더해져 훨씬 풍성한 경험을 했습니다. 반대로,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캐릭터의 표정 하나하나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이런 크로스미디어 경험은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문화적 소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신다면, 이번 주말에 퀴어 영화 한 편 어떠세요? 예전에 봤던 작품을 다시 봐도 좋고, 새로운 작품을 찾아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책으로 이어가 보는 것도 추천해요.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