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서 만난 퀴어 작가들의 수어, 예술이 된 언어

며칠 전 휴일, 북촌 한옥마을을 걷다가 낯선 풍경을 마주했다. 골목마다 설치된 작은 전시판, 그리고 손짓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알고 보니 퀴어 작가들이 모여 ‘성소수자 수어’를 주제로 비엔날레급 전시를 열고 있었다. 한겨레 분석에 따르면, 이 전시는 농인과 비농인이 함께 만든 수어 기반 예술로, 사회적 소수자의 언어가 어떻게 창작의 도구가 되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언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흥미롭다. 수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고유한 문법과 리듬을 가진 완전한 언어다. 그런데 여기에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펼쳐졌다. 벽면 가득한 수어 동영상, 손동작을 형상화한 조각, 그리고 관객이 직접 손으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 인터랙티브 작품까지. 모든 작품은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런 전시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우리가 언어에 대해 가지는 편견이다.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올바른 문장’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기체다. 수어 역시 마찬가지다. 농인 사회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방언이 있고, 세대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거기에 성소수자의 경험이 더해지면, 기존 수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정체성과 감정을 담아내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전시에서 만난 한 작가는 “성소수자 수어는 단어 자체가 정치적 행위”라고 말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청각장애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소리의 집』, 『침묵의 세계』 같은 책을 읽으며 농인의 삶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수어 문학이다. 시, 소설, 연극까지 수어로 창작되는 작품들이 꽤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시는 수어의 리듬과 손동작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장르다. 비록 나는 수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지만, 번역된 텍스트만으로도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수어 퍼포먼스’였다. 무대 위에서 농인과 청인 배우들이 함께 손으로 시를 읊었다. 관객은 자막 없이도 손짓의 속도와 강약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도 언어의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퍼포먼스가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았다. ‘말’이 아닌 ‘손’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전시 기획자는 “수어는 시각적 언어이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보다 더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시를 보며 든 생각은, 우리가 ‘소수자’라는 개념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접근하는가이다. 흔히 성소수자 이슈는 법적 권리나 사회적 인식 논의로 축소되곤 한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가?”라는 질문. 그리고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배제하는가?”라는 질문. 예술은 이렇게 우리의 무의식적 편견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한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에 설치된 퀴어 수어 전시 작품, 손동작 조형물과 관객들

사실 나는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 ‘성소수자 수어’라는 개념을 전혀 몰랐다. 그저 수어는 농인을 위한 언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를 둘러보면서,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경험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성소수자 수어는 단순히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단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미묘한 감정과 경험을 담아낸 새로운 표현 체계였다. 예를 들어, ‘커밍아웃’을 표현하는 수어는 손을 가슴 앞에서 바깥으로 확 트는 동작인데, 여기에는 두려움과 해방감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발견은 내 독서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농인 작가나 성소수자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게 되었다. 『수어의 문화사』, 『게이 수어 사전』 같은 책은 처음엔 생소했지만, 읽다 보면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특히 『수어의 문화사』에서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수어 교육이 시작된 배경과, 오늘날 미국 수어(ASL)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여기에 성소수자 수어가 접목되면서, 언어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시장을 나오며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점이 있다. 예술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기존의 언어 체계가 담지 못하는 정체성과 경험을, 예술은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편견을 내려놓고 타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전시가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메시지가 된 이유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경계에 선’ 예술과 책을 계속 찾아볼 생각이다.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수어로 쓰인 시, 수화 통역이 있는 연극, 청각장애인의 삶을 다룬 소설까지. 아직도 내가 읽지 않은 책, 보지 않은 전시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발견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