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점심시간에 유튜브를 보다가 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이들의 소망 충족 영화, 로맨틱 코미디? 그런 시대는 끝났다’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했다. ‘노팅힐’이나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를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던 20대가 있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그 장르가 더 이상 내 삶의 환상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 관객들은 더 이상 단순한 로맨스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현실의 고민과 문제를 반영하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한다.
나는 최근에 이 주제와 관련된 책 한 권을 읽었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고전인데, 이 책은 로맨틱 코미디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운명적인 만남’과 달리, 사랑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프롬은 사랑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며,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이 실종된 이유를 분석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요즘 로맨틱 코미디가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 이해가 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연한 만남에 목매지 않고, 관계의 현실적인 측면, 예를 들어 경제적 불안이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속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 영화계를 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자리를 ‘멜로’나 ‘드라마’ 장르가 대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너의 이름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로맨스에 판타지를 더했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거리감과 만남의 어려움을 다룬다. 또는 ‘기생충’ 같은 영화는 계급 갈등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지난주에 ‘브로커’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는 가족과 사랑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깨며 현대적 관계의 다양성을 보여줬다. 이런 영화들은 관객에게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격차 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은 주거 문제와 취업난에 시달리며, ‘5평 원룸에 처박힌 청년들의 현실을 만담처럼 풀어내다’라는 기사에서 보듯, 현실은 로맨틱 코미디의 낙관적인 전망과 거리가 멀다. 해당 기사는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만담 장면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쓴웃음을 조명한다. 이런 현실에서 관객들은 영화 속 캐릭터가 단순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보다, 어떻게 생존하고 관계를 유지하는지에 더 공감한다.
나 자신도 직장인으로서 비슷한 고민을 한다. 평일에는 회사와 집을 오가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독서와 영화는 그런 무료함을 달래주는 창구다. 특히 최근에는 비문학 책에 더 손이 간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같은 자기계발서나 ‘사피엔스’ 같은 역사서는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맨틱 코미디가 주던 가벼운 위로보다, 이런 책들이 주는 통찰이 더 오래 간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로코물은 여전히 인기 있고, 한국 드라마도 ‘사내 맞선’ 같은 작품이 흥행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여성 캐릭터가 더 능동적이고, 사회적 이슈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는 연애의 현실적 어려움과 성장을 다루며,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이야기를 전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포스트 로맨틱 코미디’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사랑 이야기는 유지되지만, 그 방식이 더 복잡해지고 현실을 반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SF 소설은 인간 관계의 본질을 우주적 배경에서 탐구하며, 기존 로맨스의 틀을 깬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나는 로맨틱 코미디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하이브리드 장르, 즉 로맨스에 스릴러나 판타지를 섞거나,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미 ‘타이타닉’ 같은 고전도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계급 갈등과 생존을 다뤘듯이, 앞으로의 로맨스 영화는 더 많은 층위를 가질 것이다.
결국, 평범한 이들의 소망은 여전히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책과 영화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탐구하며, 그 변화를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시대를 제대로 반영한 새로운 로맨스의 고전이 탄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