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한겨레의 문화 섹션에서 본 ‘비명처럼 들려오는 문장들…‘가자’의 고통을 번역하다’라는 제목이었다. 제목만으로도 무거운 울림이 있었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이 주제를 어떻게 우리 일상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평소 독서 추천 위주로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이런 전쟁과 고통의 서사는 선뜻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번역가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먼저 기사에서 다룬 핵심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일상을 기록한 책들의 번역 과정에 관한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증언, 그 고통을 언어로 옮기는 작업은 단순한 기술적 번역을 넘어선다. 번역가는 원문의 감정과 맥락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특히 가자 지구처럼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소외된 지역의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번역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기사에서는 번역가가 원문의 ‘비명’ 같은 문장들을 어떻게 살렸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의 공포를 묘사한 문장은 한국어로 ‘으스러지는 소리’, ‘찢어지는 비명’ 같은 표현으로 옮겼지만, 번역가는 이것이 원문의 느낌을 100% 전달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언어 간의 간극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내가 최근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바로 사이먼 세바그 몬테피오레의 ‘예루살렘’이다. 이 책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수천 년의 역사를 방대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 속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뿌리도 자세히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 땅의 고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또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였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으로는 그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가자 지구의 일상을 담은 첫손 증언이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특히 1948년 ‘나크바’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었던 강제 이주와 학살에 대한 기록이 가슴 아팠다. 그런데 그 고통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자 지구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비극적이다.
사실 우리는 뉴스에서 전쟁 소식을 접할 때 숫자와 통계에 둔감해지기 쉽다. “사망자 5000명”, “난민 10만 명” 같은 수치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만 가슴으로는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기나 시, 그림 속에 담긴 개인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가자 지구의 한 소녀가 쓴 일기에는 폭격 속에서도 꽃을 키우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디테일이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그 목소리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나는 최근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기구(UNRWA)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가자 지구 어린이의 70% 이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런 통계 뒤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번역은 그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다시 기사로 돌아가, 번역가들은 ‘가자’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무게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한다고 한다. 히브리어나 아랍어로 ‘가자’는 단순한 지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고통, 저항, 생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단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가자’라고만 쓰면 원래의 함의가 사라진다. 그래서 번역가들은 주석이나 설명을 덧붙이거나, 문맥 속에서 그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번역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겨레 기사에서는 번역가가 “가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하나의 은유이자 상징”이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뉴스 속 폐허,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일상의 조각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우리나라의 전쟁 문학도 떠올랐다. 6·25 전쟁을 다룬 소설들은 수없이 많지만, 특히 황석영의 ‘객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 같은 작품들은 전쟁의 상처를 개인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 세대가 사라지고, 기억의 전승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이런 점에서 가자 지구의 증언을 번역하는 작업은 단순히 외국 문학의 소개를 넘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께 6·25 전쟁 당시 피란길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옛날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가자 지구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목소리는 남아야 한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나는 문득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심코 ‘전쟁 같은 하루’, ‘죽을 맛이다’ 같은 표현을 쓴다. 물론 은유로서 사용하는 것이지만, 실제 전쟁과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가볍게 들릴까. 번역가들은 바로 그 점을 경계한다. 고통을 경시하지 않는 언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예를 들어, 한 번역가는 원문의 ‘고통’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고통’으로 옮기지 않고, ‘찢어지는 아픔’이나 ‘숨 막히는 절망’처럼 더 구체적인 표현을 고민한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무딘지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SNS에서 쉽게 남발되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실제 전쟁의 참상을 희석시키는 건 아닐까.
한편, 이 기사는 단순히 번역의 어려움을 넘어, 왜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가자 지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비인간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한겨레의 해당 기사는 번역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점을 강조한다. 기사에 따르면, 번역가 중 한 명은 “이 책들을 번역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원문의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번역가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고통의 매개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최근에 ‘번역의 역사’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에디스 그로스만의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인데, 번역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화와 권력의 문제임을 잘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 식민지 시대에 현지 언어의 문학이 어떻게 번역되고 소비되었는지 분석한다. 가자 지구의 번역 작업도 이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주류 언어로 옮기는 과정은 항상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식민지 시대에는 현지 문학이 서구의 시각으로 재편집되거나, 특정 부분이 검열되기도 했다. 가자 지구의 번역도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가 선택되고 어떤 이야기가 배제되는지가 중요하다. 번역가들은 이러한 권력 구조를 의식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결국, 번역은 중립적인 작업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번역가의 주관과 가치관이 개입된다. 가자 지구의 문학을 번역하는 작업은 ‘침묵을 깨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것이 번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번역가들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가자 지구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림으로써, 국제사회의 무관심에 맞서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전쟁 문학의 번역을 접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내전, 예멘 분쟁 등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를 번역하고 읽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연대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나도 앞으로 블로그에서 이런 책들을 더 적극적으로 소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최근에는 ‘가자 일기’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은 가자 지구의 한 의사가 쓴 일기로, 폭격 속에서도 병원을 지키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블로그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기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다시 떠올려본다. “번역은 고통을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라는 문장이었다. 번역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원주민의 고통을 상품화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가능하다면 연대하는 것. 작은 실천이지만, 그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가자 지구의 책을 한 권 사서 읽어보는 것, 혹은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것, 아니면 단순히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무의식중에 전쟁을 미화하거나 단순화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도 이 주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겠지만,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번역된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비명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가자 지구의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우리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을 기록한다.” 그 기록을 번역하고 읽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