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살해 10년, 우리 곁의 책들은 무엇을 말했나

며칠 전 지하철을 타다가 문득 스마트폰 화면에 뜬 기사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벌써 10주기를 맞았다는 소식이었다. 2016년 5월,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득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을 떠올리며, ‘과연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읽은 책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10년 전만 해도 페미니즘 책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여성도 당당하게 살자’는 정도의 막연한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로 출판계에는 말 그대로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났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까지, 교보문고와 예스24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82년생 김지영’, ‘페미니즘의 도전’, ‘여자와 남자는 왜 다를까’ 같은 책들로 가득 찼다. 그때 나도 충동적으로 몇 권을 샀고, 처음으로 여성의 삶을 체계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다.

한겨레의 기사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지금 성평등 교육은 여전히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여전히 생물학적 차이에 집중하고, 젠더 감수성이나 관계 맺기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책이 이 틈을 메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출판계는 확실히 변화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이라는 키워드는 주로 자기계발서나 육아서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정면으로 다루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시험’, 박혜란의 ‘아직도 남자를 기다리느냐’, 그리고 ‘김지은입니다’ 같은 에세이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편승해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내 안의 무의식적 편견을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서재 책장에 꽂힌 다양한 여성 관련 책들

하지만 책의 힘은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그것이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강남역에서 벌어진 비극 이후, 우리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권김현영의 칼럼이 지적하듯, 서울 미아동과 광주에서 발생한 여성살해 사건들은 그 폭력의 연결고리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책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의 가치를 믿는다. 책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람의 인식을 바꾼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주목받은 ‘여성살롱’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퀴어 영화의 확장은 책이 만들어낸 담론의 장이 문화 전반으로 퍼져나간 결과라고 생각한다. 2022년에는 ‘여성살롱’의 임국희 아나운서가 별세했지만, 그녀가 개척한 여성 목소리의 공간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떨까. 나는 최근 출간된 ‘페미니즘의 미래’라는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읽었다. ‘혐오는 학습되는 것이므로, 사랑도 학습될 수 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더 나은 관계를 배울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디지털 미디어보다 책이 더 깊이 있는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읽었는가’보다 ‘어떻게 읽었는가’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도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통해 행동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한 권의 책을 펼친다. 그리고 10년 후, 또다시 강남역을 생각할 때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