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가 풍경이 확 달라졌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한강 작가의 소설이 1~3위를 휩쓴 지도 꽤 됐다. 물론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뒤에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의 파급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베스트셀러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한강의 작품이 차지했다. 이 현상은 단순히 한 작가의 인기를 넘어서, ‘소설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는 신호로 읽힌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소설은 이제 끝났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굳이 긴 글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OTT 플랫폼이 쏟아내는 드라마와 영화, 유튜브의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에게 소설은 너무 느리고 지루한 매체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그 공식을 깨뜨렸다. 수상 직후 출판사들은 증쇄를 거듭했고, 서점마다 한강 코너가 생겼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새로운 회원이 급증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한 분은 ‘한강을 읽고 나서 다른 소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며 입문 계기를 설명했다. 이는 전형적인 ‘게이트웨이 현상’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독서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더 넓은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강 이후 김훈, 김영하, 정유정 등의 작품 판매량도 함께 올랐다는 통계가 있다.
[이미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나란히 진열된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이 흐름을 단순히 ‘문학 붐’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서사’ 자체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다. 영상 매체는 시각적 자극이 강하지만, 상상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반면 소설은 읽는 동안 머릿속에 장면을 그리게 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게 한다. 이러한 능동적 참여가 오히려 현대인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온 것 같다. 특히 팬데믹 이후 고립감과 불안이 커지면서, 소설 속 인물의 삶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거나 위로를 받으려는 니즈가 커졌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이 현상이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독자들이 한강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정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국 소설의 영어 번역본 출간이 늘었고, 해외 문학상에 한국 작품이 오르는 사례도 증가했다. 이는 단기적인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문화적 자산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강이라는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되다 보면, 다른 좋은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독서를 즐거움보다 의무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어쨌든 책을 펼치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고, 결국에는 독서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지는 선순환을 기대해본다.
앞으로 이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하반기에는 신간 출간이 더 활발해질 것이고, 아마추어 작가들의 창작 활동도 늘어날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도 이제는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넘어, 지역 서점과 연계한 작가 강연회나 북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독서의 형태는 변해도, 그 본질적인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