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겨레의 기획 기사 ‘넓어지는 퀴어 영화의 영토’를 읽으며, 영화와 책이라는 두 매체가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며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최근 퀴어 영화는 더 다양해지고 대중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성소수자의 고통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로맨틱 코미디나 스릴러 같은 장르 속에서 자연스럽게 퀴어 캐릭터를 녹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변화는 영화만의 몫이 아니다. 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예전에는 퀴어 소설이나 에세이가 소수 서점에서만 발견되거나 문학상에서 주목받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주요 출판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퀴어 주제의 책을 내고,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 흐름을 보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지점은 ‘장르의 확장’이다. 퀴어 영화가 더 웃기고 더 섹시해졌다는 기사 문구는, 퀴어 서사가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읽은 일본 소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미스터리 장르 안에 퀴어 정체성을 녹여낸 작품인데, 독자 리뷰를 보면 ‘퀴어 소설’이라는 꼬리표보다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퀴어 서사는 더 많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책과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공감의 메커니즘’이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만, 책은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해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예를 들어, 2024년 출간된 에세이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저자가 퀴어로서 겪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의 기쁨과 슬픔을 마치 내 일처럼 느꼈다. 영화 ‘러브, 사이먼’이 청소년 퀴어의 첫사랑을 유쾌하게 그린 반면, 이 에세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마주하는 사회적 시선과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두 매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내가 이 주제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나 자신도 책을 통해 퀴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자신의 파트너를 ‘그녀’라고 부르는 걸 듣고, 무심코 ‘남편은?’이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동료의 표정이 굳어졌고, 나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후로 퀴어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나만 몰랐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 배우지 않은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위키백과에서 ‘퀴어 이론’에 대해 찾아보면서, 이 개념이 단순한 성적 지향을 넘어 기존의 규범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학문적 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퀴어 서사가 더 이상 소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 ‘엘리멘탈’이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을 그렸다면,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하트스토퍼’는 청소년 퀴어 로맨스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첫사랑의 설렘과 불안을 보여준다. 이런 콘텐츠들은 퀴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는 안도감을, 이성애자 관객에게는 ‘이렇게 보편적인 감정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밝아 보인다. 출판계에서도 퀴어 주제의 책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고, 영화제에서도 퀴어 영화 섹션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2025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퀴어 영화 상영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반갑다. 다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 퀴어 서사가 ‘상업성’에만 치우쳐 진정한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할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쁘고 순수한 퀴어 캐릭터만 등장하는 경향은 오히려 현실의 복잡성을 가릴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책과 영화는 그 다양성을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다. 나는 앞으로도 퀴어 서사가 담긴 책과 영화를 계속 찾아볼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시야를 넓히고, 더 나은 동료, 더 나은 사회 구성원이 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독서와 영화 감상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타인을 이해하는 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